▲ 지난 13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아람누리 도서관 강의실에서 옹달샘 봉사단 단원들이 ‘춘향전’ 연극 공연 연습을 마친 뒤 “잘했다”며 서로 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옹달샘 연극 봉사단
2017년부터 경로당 등 찾아
마술·동화·웃음치료 곁들여
최근까지 25차례 공연 펼쳐
연극은 협동·인내심 키우고
창의성·기억력 향상에 좋아
오래 앓던 우울증도 이기고
나도 모르는 재능 발견 기뻐
위트·풍자로 각색한 ‘춘향전’
어르신들에게 큰 호응 얻어
2년 동안 사랑받는 작품 돼
“스스로 연극을 공연하며 기쁨을 얻고 연극을 통해 노인과 환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어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노인이 노인을 즐겁게 하는 예술 장르로 연극만큼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없습니다.”
노인들에게 연극이란 무엇일까. 연극은 배우가 관객을 앞에 둔 무대에서 극본 속 인물로 분장해 몸짓·동작·말로써 창출해 내는 예술로 정의되지만 노인들에게는 ‘보는 즐거움’을 주는 극(劇) 놀이다. 즉 서로 재미있게 공감하며 소통하는 행위로 노인들에게 강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아마추어 연극을 통해 취미생활과 건강을 유지하고 요양원·경로당·노인주간보호센터 등의 노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꽃노인 자원봉사단이 있어 화제다. 바로 경기 고양시 고양실버인력뱅크의 지원을 받고 있는 ‘옹달샘 봉사단’으로 단원들은 베이비 부머와 60∼70대 노인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이 연극을 얼마나 좋아하고 어떻게 봉사하는지 궁금했다. 고양실버인력뱅크의 도움을 받아 한창 연습 중인 옹달샘 봉사단을 찾아갔다.
지난 13일 오후 1시 고양시 아람누리 도서관 지하 1층 강의실. 옹달샘 봉사단원 10여 명이 좁은 공간에서 춘향전 연극 공연을 연습하고 있었다.
“춘향아, 오늘 밤 내 청을 들어주겠느냐.”
“돈도 권력도 다 좋지만 더 소중한 것은 사랑이옵니다.”
“하지만 사랑은 짧고 돈은 영원하다는 것을 넌 아직 모르는구나.”
“차라리 저를 감옥에…” … “저를 풀어주고 줄 선물은 아이폰보다 좋다고요? 지∼ 진주목걸이까지.”
사또로 분장한 서란희(여·71) 씨가 청을 거절하는 춘향이 역 김영희(여·75) 씨를 각종 선물로 유혹하는 장면은 절로 웃음이 나오게 만들었다. “사랑에도 시효가 있다고? 춘향아 우리 사랑을 잊었단 말이냐?” 이몽룡 역의 이옥녀(여·70) 씨가 사랑을 호소하는 모습은 애달프기만 했다. 윤종례(여·79) 씨와 민경희(여·65) 씨도 각각 월매 역과 포졸 역을 능청스럽게 해냈다. 김두술 단장은 서서 배역들의 연기를 일일이 지도했다.
단원들은 각자 의상을 입고 대본 없이도 맡은 배역을 척척 해냈고 대사를 잊어버릴 경우 즉흥적으로 대사를 만들어 연극의 막(幕)과 장(場)을 이어나갔다. 고전적인 춘향전보다는 위트·유머·풍자를 섞어 재미있게 각색한 현대판 춘향전에 가까웠다. 한참 연극을 구경하는 동안 혼연일체가 되는 느낌이었다. 김 단장은 실제 공연을 할 때는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마당극처럼 관객을 포졸로 등장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김 단장은 “‘어르신들이 제일 좋아하는 연극 테마가 무엇일까’ 궁리하다가 춘향전 대본을 썼고 반응이 의외로 좋아 춘향전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단원들은 한결같이 연극을 통해서 협동심과 인내심을 키울 수 있고 창의성·발표력·기억력이 훨씬 좋아졌다고 했다. 단원들은 생각보다 배역에 의욕적이었다.
연극 외에 한국무용과 오카리나 연주를 능숙하게 하는 이 씨는 “이도령 역을 하다 보면 옛날 얘기들이 되살아난다”며 “대사 외우기가 힘들지만 연습을 많이 하고 단원들과 협력해 재미있게 공연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연극이 난생처음이라는 김 씨는 “손자를 키우며 우울증이 왔었는데 연극을 하면서 나아졌고 치매 예방에도 좋은 것 같다”며 “힘에 부치지만 청순·지조·현모양처의 상징인 춘향 역을 맡아 오랫동안 연극을 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목소리가 굵고 저음이라 사또 역을 맡게 됐다는 서 씨는 “연극을 하면서 순발력과 자신감이 생기고 나도 모르는 재능을 발견하게 됐다”며 “지난 7월 노인 일자리 소양교육 당시 인원 1000명을 대상으로 인문학강의를 떨지 않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연극 연습 덕분”이라고 말했다.
한국무용·각설이 타령 솜씨가 뛰어난 윤 씨도 “연극은 많이 움직이지 않고 재미있는 게 장점으로 앞으로 연습시간을 맞추기 어려워도 짬을 내 연극을 계속할 생각”이라며 맞장구쳤다.
춘향이 역을 하다가 포졸 역을 하게 된 민 씨는 “원래 연극에는 소질이 없지만 화합하는 분위기 속에서 연극과 오카리나 연주 봉사를 할 수 있어 너무 좋다”며 만족했다. 연습 중인 이날 초창기 춘향이 역을 맡았던 고금자(58) 씨가 격려차 참석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책 읽어주기 봉사를 하는 고 씨는 “춘향전이 2년 동안 이어져 오며 어르신들을 위해 공연되고 있다고 하니 감개무량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옹달샘 봉사단은 지난 2016년 11월 창단했지만 본격적인 봉사는 2017년 1월부터 시작했다. 지난해 9월과 11월 각각 화전동 종합복지센터와 카네이션 요양원에서 열린 어르신 생신 잔치에 초대를 받고 춘향전을 공연하는 등 지난 2017년 1월부터 최근까지 모두 25차례 봉사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노인시설을 방문, 연극 공연은 물론 다른 봉사팀과 함께 동화세상·마술공연·웃음치료·노래건강체조·전통놀이 등의 합동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봉사단의 열정적인 공연에도 요양병원 중증환자들의 경우 즉각적인 반응을 보일 수는 없지만 연극을 보며 따뜻한 사랑을 듬뿍 느껴 치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있다. 봉사단 단원은 현재 15명. 하지만 연극 강좌가 시작되는 오는 4월부터는 20명을 훌쩍 넘기며 봉사활동에 보다 적극 나설 예정이다.
고양 = 오명근 기자 om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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